• 2024. 3. 15.

    by. 기다리고 있을게

    천문학자 시리즈 2
    현대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탄생

     미국의 유명 천문학자이자 다양한 저술활동을 한 작가이며 천체물리학자인 칼 세이건은 1934년 미국 뉴욕의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도서관에 드나들며 천문학에 관심을 가진 칼 세이건은 그 당시 접한  책들을 통해 광활한 우주 속에서 미약한 존재일 뿐인 인간이라는 존재에 큰 충격을 받게 되고 천문학자가 되길 꿈꾸게 됩니다. 학업에 뛰어났던 칼 세이건은 월반을 거쳐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교사들로부터 만족할만한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없었으며 학업보다는 여러 과학 소설들을 탐독하면서 빠져들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생물학이나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보였으며 이후 대학에 진학한 이후 졸업 논문의 주제를 정하는 데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월반을 한 덕에 일찍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당시 나이가 16살이었고 어린 나이에 입학할 수 있는 학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시카고 대학으로 진학하게 됩니다. 대학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하였으며 이곳에서 칼 세이건과 비슷한 나이에 조기입학한 첫 번째 부인 린 알렉산더를 만나게 됩니다. 분야는 달랐지만 아내였던 린 알렉산더 또한 뛰어난 학자였는데 진화생물학자였으며 린 알렉산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생물학자인 아들과 공동 저서를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시카고 대학 졸업 이후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로서 재직하게 되는데 천문학 이외에 생물학, SF소설 등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하며 매스컴에 등장하며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하버드 재직 이후에는 코넬 대학으로 옮겨 교수직을 이어가게 됩니다. 또한 미국항공우주국, NASA에서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되는데 마리너, 보이저, 패스파인더 계획 등이 해당됩니다. 특히 보이저 계획의 경우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에 촬영해 지구로 전송한 태양계 행성들의 가족사진으로 유명한데 이 사진 촬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람이 칼 세이건이었습니다. 미국항공우주국의 대다수 동료들은 카메라를 태양 방향으로 틀어 사진을 찍는 행위가 카메라나 탐사선의 다른 장비들을 손상시킬 수도 있어 반대했지만 칼 세이건의 의견에 따라 행성 가족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합니다. 당시 카메라의 설치 또한 그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었는데 지극히 현실적이었던 칼 세이건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진행되는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서 사진 하나 촬영해서 제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동료들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이 등장하는데 보이저 1호의 사진 속 지구는 먼지의 티끌처럼 아주 작은 파란 점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진을 접한 사람들은 우주 속 보잘것없고 미약한 인간들인 자신들이 얼마나 약하고 오만한 존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칼 세이건의 저서

     칼 세이건은 천문학, 천체물리학뿐만이 아니라 생명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저서들을 남겼습니다. 단지 자연과학 분야의 이론서나 과학 논문, 기사만을 작성한 것이 아니라 공상과학소설도 집필해 책으로 출간되었으며 일부 작품들은 영화화에 성공하였고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유명한 저서를 꼽자면 대중에게 많이 읽혔던 코스모스, 창백한 푸른 점, 콘택트 등이 있으며 생물학 관련 저서로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 에덴의 용,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습니다. 참고로 코스모스는 칼 세이건의 세 번째 부인인 앤 드루이언에게 헌정되었는데 보이저 탐사선 계획을 진행할 당시 프로젝트 동료였습니다. 위의 저서들 외에도 우주의 지적 생명, 다른 세계들, 브로카의 뇌: 과학에 대한 낭만에 대한 생각, 혜성,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어둠 속의 등불과도 같은 과학, 수십억의 수십억: 한 밀레니엄의 끝쪽 가장자리에 서 생명과 죽음에 대해 사색하다,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신의 탐구에 관한 견해와 같은 단독 혹은 공동 저술한 책들이 있습니다. 

     

    관측대
    천문 관측을 위한 관측대

    칼 세이건의 종교관

     칼 세이건은 스스로는 무신론자라 생각하지 않는 불가지론자였습니다. 불가지론은 신의 존재와 같은 명제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보고 사물의 본질은 인간이 인식 불가능하다는 철학적 관점인데 평소 자신이 무신론자가 아닌 이유에 대해 설명할 때 그의 저서 콘택트를 통해 무신론자라면 현재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또한 이러한 생각들은 신이 존재하는 세계관을 가진 그의 소설이자 영화로 제작된 콘택트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존재 자체를 긍정하거나 부정하지도 않았고 신이 존재한다면 우주의 시작이나 탄생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있었을 뿐인 상태라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어린 시절 유대교 신자인 부모의 영향으로 종교에 회의적이기는 했지만 종교나 종교인들에게 공격적이거나 비판적이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 관점에서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말년에 백혈병으로 투병하는 와중에도 종교를 권유하는 가족들에게도 끝까지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철학을 고수했습니다. 

     

    그 외

     통칭 SETI라고 부르는 외계 지적생명탐사의 활동들은 칼 세이건이 외계생명에 호의적이고 낙관적인 성향을 가진 것이 투영되어 있다고 보이는데 외계생명체를 찾아 나서는 행위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스티븐 호킹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입니다. 핵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천문학 관련 비영리 단체에서 교육 활동도 진행했으며 우주생물학의 이론적 바탕을 마련했습니다. 동료, 후배 과학자들에게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었으며 우주 탐사 계획의 일원으로서 진행한 프로젝트의 성공에 기여했고 다양한 저술 활동 및 논문을 통해 단지 지식만을 전달한 것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와 과학의 대중화까지 이끌었습니다. 이렇듯 천문학계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많은 상을 수상하고 업적을 남겨온 칼 세이건은 백혈병 투병 끝에 합병증으로 1996년 사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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